집짓기

철학자와 우리네 옛 집

복음석 2011. 12. 3. 09:46

성리학자, 건축에 중독되다

등록 : 20111202 20:53

 

이언적 독락당·이황 도산서원…
옛집에 담은 선비의 마음 추리

철학으로 읽는 옛집
함성호 글ㆍ유동영 사진/열림원ㆍ1만5000원

팔방미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건축가 함성호씨는 문단의 중견 시인이며, 만화에 대한 책도 쓰고 각종 문화행사 기획도 한다. 집 짓는 것 못잖게 많은 책을 지어온 저술가로도 유명한 그가 새 책 <철학으로 읽는 옛집>을 냈다.

지은이는 우리 건축의 걸작들로 꼽히는 고택들이 당대의 대유학자들, 그러니까 성리학의 태두들이 지은 집이란 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철학이란 코드로 이 집들을 들여다본다. 철학과 건축이란 말도 부담스러운데 ‘성리학’까지?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책은 ‘이야기책’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집 이야기에,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더해져 옛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집 짓고 인생을 즐기려했는지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성리학자들이 건축에 ‘중독’되었다고까지 표현한다. 그리고 그 사례로 독락당을 지은 회재 이언적, 도산서당을 남긴 퇴계 이황, 해남 녹우당에 살았던 고산 윤선도, 다산초당을 설계한 다산 정약용 등을 꼽는다. 이들이 직접 지은 집을 살피는 그의 접근법은 예상과는 다르다.

한옥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난해하게 여기는 각종 양식-주심포니 익공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지 말란다. 또한 옛집들이 당시 사회경제사적 현상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굳이 연관짓지 않는다. 우리 건축이란 본디 양식 구분이 잘 되지 않는 게 특징이며,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해오지 않았고, 오히려 시대와 상관없이 관통되는 것이 핵심이란 것이다. 이런 특수성을 만들어낸 본질이 바로 철학, 곧 조선의 성리학이다. 이 성리학도 자연스럽고 섬세한 ‘시인의 마음’과 다름없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그래서 집 안이 아니라 집 바깥에서 고택들을 봐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우암 송시열이 바위 위에 지은 암서재란 집을 보자. 그는 암서재 앞에서 집을 응시한다. 그다음은 암서재를 마음속에서 지우고 터를 다시 본다. 암서재가 들어서기 전 풍경을 다시 유추한 뒤 그다음은 송시열의 마음으로 향한다. 송시열은 왜 이런 곳을 집터로 골랐을까, 당시 그는 어떤 처지였을까…. 역순으로 올라가면 결국 집에 그가 담으려 했던 마음에 이른다. 그 뒤 성리학자로서의 송시열 이야기가 따라붙는 식이다. 그리하여 암서재는 정치적 위기에 빠졌던 우암이 권토중래를 준비하는 ‘암중모색의 집’이라 결론지어진다. 김장생의 임이정은 현실주의자의 포석이었고, 도산서당은 집 자체보다 정원이 더 중요했던 철학자의 집이며, 논산 윤증고택은 주자주의 시대에 용감하게 ‘탈주자학’을 추구했던 정신이 구현된 건물이다.

저 쟁쟁한 성리학자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건축가로 지은이는 이언적을 꼽는다. 시인 건축가의 눈으로 본 이언적의 독락당은 설계도가 ‘시’였던 집이다. 이 집을 지을 때의 이언적의 생각을 전해주는 것은 중국 정치가 사마광의 <독락원기>. 처지가 비슷했던 사마광과 공감했던 이언적은 이 시를 바탕으로 집을 구상했다.

성리학자들이 어떤 세상을 꿈꿨고, 그 이상을 어떻게 자기 집에 간직하려 설계했는지 추리하듯 살펴보는 지은이의 설명을 듣다 보면 한국 옛집이 곧 선비들 개개인이 가졌던 철학의 응고물임을 절로 깨닫게 된다.